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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작성
: 1973년 1월 24일 씌어짐
출처 : K. 마르크스, 자본론 I (上) p14 ~19
자본론 제2판 후기 中에서
출판사: 비봉출판사, 1989
번역 : 김수행 번역
독일 부르즈와지의 대변자들은 학자이든 아니든 간에, 그들이 나의 이전 저작에 대하여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것처럼, [자본론]을 우선 묵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이 벌써 시대의 정세에 적합하지 않게 되자, 그들은 나의 책을 비판한다는 구실 밑에 "부르즈와적 의식을 진정시키기 위한" 처방들을 써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 신문에서 유력한 반대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예컨대 [인민국가]紙의 요제프 디츠겐(Jeseph Dietzgen)의 논문을 보라), 지금까지 이들에게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론]의 훌륭한 러시아어 번역이 1872년 봄에 페테르부르그에서 나왔다. 3,000부가 발간되었으나 현재 벌써 거의 다 팔렸다. 이미 1871년에 키예프 대학 경제학 교수 지베르(H. Sieber)는 자기의 저서 [리카도의 가치이론과 자본이론]에서 나의 가치, 화폐 및 자본에 관한 이론이 그 기본적인 점에서 스미스-리카도 학설의 필연적인 발전임을 증명하였다. 그의 가치있는 책을 읽고 서유럽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순수이론적 입장이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본론]에서 적용된 방법은, 그에 대한 상호모순되는 해석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잘 이해되고 있지 않다.
예컨대 파리의 [실증주의 철학평론]은 한편으로는 내가 경제학을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엇인지 추측해 보라!─내가 주어진 사실의 비판적 분석에 국한하고 미래의 음식점을 위한 요리법(콩트류의?)을 저술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형이상학적이라는 비난에 대하여 지베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실제의 이론이 문제가 되는 한, 마르크스의 방법은 영국 학파 전체가 사용하는 연역적 방법인데, 이 방법의 결점과 장점은 가장 우수한 이론경제학자들에게 공통되는 것이다."
볼로크(M. Block)는 논문 [독일의 사회주의 이론가들] ([경제학자 잡지], 1872년 7월 및 8월호)에서 나의 방법이 분석적 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이 저적으로써 가장 탁월한 분석적 재능이 있는 사람의 하나로 되었다."
독일 평론가들은 물론 헤겔식의 궤변이라고 떠들고 있다. 페테르부르그의 [유럽 통신]은 [자본론]의 방법만을 취급한 논문(1872년 5월호. pp427~436)에서 나의 연구방법은 엄격히 실재론적이지만 서술방법은 불행하게도 독일 변증법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필자 [카우프만(I.I. Kaufman)]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서술의 외적 형식에 의하여 판단한다면 일견 마르크스는 일대 관념론 철학자, 그것도 이 말의 독일적 의미[즉, 나쁜 의미]에서의 관념론 철학자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경제적 비판에서는 그의 모든 선행자들보다 무한히 더 실재론자인 것이다...그는 관념론자라고 말할 수는 도저히 없다."
이 필자 자신의 비판으로부터 약간 발췌하는 것이 그에게 대한 가장 훌륭한 대답으로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발췌는 러시아어 원문을 입수할 수 없는 많은 독자들에게는 흥미있는 것일 것이다.
내가 나의 방법의 유물론적 기초를 설명한 [정치경제학 비판](베를린, 1859년) 서문 4~7페이지에서 하나를 인용한 다음, 필자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중요한 오직 하나는 그가 연구하고 있는 현상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현상들의 일정한 형태가 일정한 역사적 시기와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에서 그 현상들을 지배하는 법칙뿐만이 아니다.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현상들의 변화의 법칙, 현상들의 발전의 법칙, 즉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의 이행의 법칙, 상호관계의 한 질서로부터 다른 질서로의 이행의 법칙이다. 그는 일단 이 법칙을 발견하자 이 법칙이 사회생활에 발현되는 그 결과들을 상세하게 연구한다...따라서 마르크스는 오직 다음 하나에만 전념한다. 즉, 정밀한 과학적 연구에 의하여 사회관계의 일정한 계기적 질서의 필연성을 증명하며, 그의 출발점과 거점으로 되는 사실들을 될수록 더 완전무결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현재의 질서의 필연성을 증명하고 동시에 이 질서가 반드시 [즉 사람들이 이것을 믿든 안 믿든, 의식하든 말든 전혀 상관없이] 이행하지 않을 수 없는 다른 질서의 필연성을 증명하면 그만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운동을 법칙─인간의 의지, 의식 및 의도와는 독립하여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가 인간의 의지, 의식 및 의도를 결정하는 그러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이라고 본다...만약 의식적 요소가 문화사에서 그러한 종속적인 역할을 한다면, 문화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비판이 의식의 어떤 형태나 어떤 결과를 자기의 기초로 삼을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다시 말하면, 비판의 출발점으로 될 수 있는 것은 관념이 아니고 오직 외부적 현상뿐이다. 이와 같은 비판은 한 사실을 관념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실과 비교하고 대조하는 데 있을 것이다. 비판에서 중요한 것은 다만 두 개의 사실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연구하는 것이며, 그리고 실제로 그것들은 서로 상이한 발전의 요소들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이한 발전단계들이 나타나는 순서, 순차성 및 관련을 그에 못지 않게 정확하게 연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경제생활의 일반적 법칙들은 동일한 것이며, 그것을 현재에 적용하든 과거에 적용하든 마찬가지다라고. 바로 이것을 마르크스는 부인한다. 그에 의하면, 그와 같은 추상적인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그의 견해에 의하면, 반대로 각각의 역사적 시기는 자기 자신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생활이 일정한 발전시기를 경화하여 일정한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 이행하자마자, 그것은 벌써 다른 법칙에 의하여 지배받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경제생활은 생물학이라는 다른 분야에서의 진화의 역사와 비슷한 현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종래의 경제학자들은 경제법칙을 물리학 및 화학의 법칙과 동일시함으로써 경제법칙의 성질을 잘못 이해하였던 것이다...현상을 더욱 깊이 분석하면, 사회적 유기체들도 식물 및 동물과 마찬가지로 그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나의 동일한 현상이라도 이 유기체들의 상이한 총체적 구조, 그것들의 개개의 기관의 다양성, 기관이 기능하는 조건들의 차이 등등으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마르크스는 예컨대 인구법칙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는 반대로 각각의 발전단계는 자기 자신의 인구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생산력의 발전수준의 차이에 따라 사회적 관계들과 그것들을 규제하는 법칙들도 달라진다. 이 관점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제도를 연구하고 해명할 목적을 내세운 마르크스는 경제생활의 정확한 연구가 반드시 가져야 할 목표를 엄밀히 과학적으로 정식화하였을 따름이다...이와 같은 연구의 과학적 가치는 일정한 사회 유기체의 발생, 생존, 발전, 사멸과 다른 보다 높은 사회유기체에 의한 그 교체를 규제하는 특수법칙들을 해명하는 데 있다. 또 이러한 가치를 마르크스의 책은 실지로 가지고 있다."
이 필자는 그가 나의 실재론적 방법이라고 부른 것을 아주 정확하게 모사하였고, 또 이 방법을 적용하는 나의 개인적 수법을 아주 호의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바로 다름아닌 변증법적 방법을 묘사한 것이다.
물론 발표방식은 형식의 면에서 조사방식과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조사는 마땅히 세밀하게 자료에 정통하고, 자료의 상이한 발전형태들을 분석하고, 이 형태의 내적 관련을 규명해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난 뒤에라야 비로소 현실의 운동을 적절하게 발표할 수 있다. 이것이 잘 되어 자료의 생명이 거울에 반영되듯이 관념에 반영되면, 그것은 마치 우리가 선험적 구조물을 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헤겔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헤겔에게 있어서는, 그가 이념(Idea)이라는 명칭 하에 자립적인 주체로까지 전환시키고 있는 사고과정은 현실세계의 창조자이고, 현실세계는 사고과정의 외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는, 반대로, 관념론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이 인간의 두뇌에 반영되어 거기에서 사고의 형태로 변형된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약 30년 전에 헤겔 변증법이 아직 유행하고 있던 그 당시에 헤겔 변증법의 신비화된 측면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내가 [자본론] 제1권을 저술하고 있던 때에는, 독일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활개치는 불평많고 거만하고 또 형편없는 아류배가, 일찍이 레싱(Lessing) 시대에 용감한 모제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이 스피노자(Spinoza)를 대하듯이, 헤겔을 바로 "죽은 개"로서 취급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을 이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라고 공언하고 가치론에 관한 장에서는 군데군데 헤겔의 특유한 표현방식을 흉내내기까지 하였다. 변증법이 헤겔의 수중에서 신비화되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다름 아닌 헤겔이 처음으로 변증법의 일반적 운동형태를 포괄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서술하였다. 헤겔에게 있어서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 신비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알맹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
변증법은 그 신비화된 형태로 독일에서 유행하였다. 왜냐하면 변증법이 현존하는 것을 찬미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변증법은 그 합리적인 형태에서는 부르즈와지와 그 이론적 대변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자아낼 뿐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곧,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모든 역사적으로 전개된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간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들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 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진행이 모순들로 꽉 차 있다는 사실은 산업활동의 주기적 순환(이것의 봉우리가 일반적 공황이다)을 통하여 실무적인 부르즈와지에게 매우 분명히 알려지고 있다. 이 일반적 공황은 비록 아직은 그 초기단계에 있지만 또다시 박두하고 있으며, 또 그것은 그 영향권의 다면성과 그 작용의 강도에 의해서 새 신정 프러시아─독일 제국의 졸부들의 머리 속에까지 변증법을 새겨넣을 것이다.
칼마르크스
런던, 1873년 1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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