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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작성
: 1867년 씌어짐
출처 : K. 마르크스, 자본론 I (下) p957 ~960
출판사: 비봉출판사, 1989
번역 : 김수행 번역
자본의 시초축적 즉 자본의 역사적 발생은 결국 무엇으로
귀착되는가? 그것이 노예 및 농노를 직접적으로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것[즉 단순한 형태변화]이 아닌
이상, 그것은 오직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 [즉, 자기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사적 소유의 해체]을 의미할 따름이다. 사회적
· 집단적 소유의 대립물로서의 사적 소유는 오직 노동수단
및 노동의 외부조건들이 (사적) 개인에게 속하는 곳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 개인이 노동자인가
비노동자인가에 따라 사적 소유의 성격도 또한 달라진다.
언뜻 보아도 눈에 띄는 이 사적 소유의 무한히 다양한
색채는 두 극단 사이에 있는 중간 상태들을 반영할 따름이다.
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자의 사적 소유는 소경영의 토대이며, 소경영은 사회적 생산의 발전과 노동자 자신의 자유로운 개성의 발전에 필요한 조건이다. 이 생산방식이 노예제도, 농노제도 및 기타의 예속관계 아래에서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개화하며 자체의 모든 정력을 발휘하고 전형적 형태를 취하는 것은 오직 노동자가 그 자신이 사용하는 노동조건의 자유로운 사적 소유자인 경우 [즉 농민이라면 그가 경작하는 토지를, 수공업자라면 그가 능숙하게 다루는 도구를 소유하는 경우]뿐이다.
이 생산방식은 토지의 분할과 기타 생산수단의 분산을 전제로 한다. 이 생산방식은 생산수단의 집중을 배제하기 때문에 각 생산과정 내부에서의 협업과 분업, 자연력에 대한 사회적 지배와 통제, 사회적 생산력의 자유로운 발전도 배제한다. 이 생산방식은 생산 및 사회가 자연발생적인 좁은 범위 안에서 운동할 때에만 적합하다. 이 생산방식을 영구화하려는 것은, 페쾨르(Pecqueur)가 옳게 지적하고 있듯이, "만인의 범인화를 명령"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일정한 발전수준에 도달하면 이 생산방식은 자기 자체를 파괴하는 물질적 수단을 만들어 낸다. 이 순간부터 사회의 가슴 속에서는 이 생산방식은 철폐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철폐된다. 그것의 철폐, 즉 개인적이며 분산적인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집중된 생산수단으로 전환되는 것, 따라서 다수인의 영세한 소유가 소수인의 거대한 소유로 전환되는 것, 그리고 광범한 국민대중으로부터 토지와 생활수단과 노동도구를 수탈하느 것, 이러한 처참하고 가혹한 국민대중의 수탈이 자본의 전사를 이룬다. 거기에는 일련의 폭력적 방법이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 가운데서 오직 자본의 시초축적의 방법으로서 획기적인 것만을 위에서 고찰하였다.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은 가장 무자비한 만행에 의하여, 그리고 가장 비열하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야비하고 가장 가증스러운 정열의 충동 하에서 수행되었다. 자신의 노동으로 획득한 사적 소유, 말하자면 개개인의 독립적 노동자와 그의 노동조건과의 융합에 입각한 사적 소유는, 타인노동[그러나 형식상으로는 자유로운 노동]의 착취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의하여 축출된다.[1]
이 전환과정이 낡은 사회를 깊이에서나 넓이에서나
충분히 분해시키자 마자, 또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고 그들의 노동조건이 자본으로 전환되자마자,
그리고 또 자분주의적 생산방식이 자기 발로 서게 되자마자,
노동이 더욱더 사회화되는 것, 토지 및 기타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이용되는 생산수단[즉 공동적인 생산수단]으로
더욱더 전환되는 것, 따라서 또 사적 소유자를 더욱더
수탈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제는 수탈을
당할 자는 自營의 노동자가 아니라 [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이다.
이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의 내재적 법칙의
작용에 의하여, 즉 자본의 집중에 의하여 수행된다. 항상 한
자본가가 많은 자본가를 파멸시킨다. 이러한 집중[즉 소수
자본가에 의한 다수 자본가의 수탈]과 병행하여 기타의
발전도 더욱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즉, 노동과정의 협업적
형태의 성장, 과학의 의식적 기술적 적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노동수단이 공동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는 것, 모든 생산수단이 결합된 사회적 노동의
생산수단으로서 사용됨으로써 절약되는 것, 각국의
국민들이 세계시장의 그물에 얽히게 되는 것, 따라서 또
자본주의 체제의 국제적 성격의 증대 등등이 더욱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이 전환과정의 모든 이익을 가로채고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는 끊임없이 줄어가지만, 빈곤·억압·예속·타락·착취의
정도는 더욱더 증대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수가 계속
증가하며 또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메커니즘 그 자체에
의하여 훈련되며 통일되면 조직되는 계급인] 노동자 계급의
반항도 또한 증대해 간다. 자본의 독점은 [이 독점과 더불어
또 이 독점 밑에서 번창해 온] 그 생산방식의 질곡으로 된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점에 도달한다.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된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弔鐘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으로부터 생겨나는 자본주의적 취득방식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낳는다. 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개인적 사적 소유의 첫번째 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과정의 필연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부정은 사적
소유를 부활시키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의 시대의 성과-협업
및 토지와 생산수단[노동 그것에 의하여 생산된 것]의 공동
점유-에 입각한 개인적 소유를 확립한다.
물론, 개인들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분산된 사적 소유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로 전환되는 것은, 사실상 이미 사회적 생산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전자의 경우는 소수의 횡령자가 국민대중을 수탈하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국민대중이 소수의 횡령자를 수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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