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à인식(knowledge)과정,
중추 신경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객관적 실재에 대한 관념적 반영 형식. 감각은 감각기나 수용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대상이나 과정들의 각 속성 및 측면에
대한 모상이다.
감각은 반영의
기본적인 형식이므로 계통 발생적인 발전 과정에서 지각(Wahrnehmung)에 선행한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은 동물의 감각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인간의
감각은 상호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으며, 객관적
실재를 감성적, 이성적으로 반영하는 다른
형식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질이 우리의 감각 기관에 영향을 미쳐
감각을 만들어 낸다.
감각은 뇌라든가 신경, 망막 등에 의존하며”(Lenin 14, 47), 나아가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의식 과정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감각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의식 및 사회적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감각은 객관적
실재의 속성에 대한 모사이다.
감각의 내용은 객관적으로 규정되며 따라서
감각은 객관적 성격을 갖는다. 왜냐하면
감각은 물질 세계의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속성을 어느 정도
충실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감각이 객관적 실재의 복사(copy)는 아니다.
객관적 실재의 모사(Abbildung)는
감각 기관 및 중추 신경계의 특수한 기능 방식과 합법칙성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감각은
주관적인 측면도 갖고 있는데, 이 주관적인
측면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과도 관계된다. 감각은
주관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유기체나 감각 기관 및 신경계의
상태, 주관이 갖고 잇는 지식의 범위 등도
감각을 규정하는 요인으로서 함께 작용한다. 감각은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통일이다. 그러나
주관적인 요소도 결국에는 객관적인 제약을 받는다. 왜냐하면
감각 기관과 인식 주관 일반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물질
발전이 낳은 산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감각에는
한계가 있어서 객관적 실재의 극히 일부분만을 모사할
뿐이다. 그러나 여러 감각의 총체는
인식에 필요한 감각 자료를 제공해 주며, 인간은
그 자료를 이성으로 가공함으로써 객관적 실재에 대한 좀 더
넓고 깊은 인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지각
인간의 두뇌라는
형태로 특수하게 조직된 물질이 만들어 낸 최고의 산물. 사고라고도 한다. 사유는
생물학적인 발전을 토대로 싹트며, 사회발전의
결과인 인간의 사회적 노동이 그 동인이 된다. 사유는
인간 정신 활동의 최고 형태이며, 사유의
본질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대상 및 과정들 속에 들어 있는
보편적인 것, 본질적인 것, 합법칙적인
것을 개념적으로 반영하는 데 있다. 사유는
인간의 사회적인 노동 과정에서 싹텄다. 다시
말해서 본래 외적이고 대상적인 인식 활동, 즉
물질적인 대상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활동이 오랜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내적이고 정신적인 활동, 즉
개념이라든가 언어적인 기호들을 다루는 활동으로 이행했다.
그리하여 외적이고 대상적인 인식 활동의
결과들은 개념이나 기호로 표현되고 고정되었다. 내적이고
정신적인 활동으로서의 사유는 감각적으로 주어진 객관적
실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려 개별적인 대상의 한계를
넘어서서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연관과 구조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유를 통하여 인간은 자연력을 점점 더
많이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사회발전을 의식적, 계획적으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인식 과정에서
사유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철학사에 두 가지
서로 다른 일면적인 인식론적 학설이 있는데, 그
하나는 <경험론>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론>이다.
유물론적인
특징과 관념론적인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경험론은 모든
인식이 결국 감각 경험, 즉 객관적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직관(Anshauung)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지만(이 점에서는 옳다),
일반적인 것, 본질적인 것,
합법칙적인 것을 최초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사유의 독특한 성질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험론은 사유를 대체로 관념 연합,
즉 관념들의 결합, 분리 및
비교로 환원시키며 따라서 이론적인 지식의 발생, 일반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설명할 수 없다….
한편 경험론과
마찬가지로 유물론적인 특징과 관념론적인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는 합리론은 인식 과정에서 사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이점에서는
옳다), 사유를 감각 경험, 즉
직관으로부터 분리하며 사유 그 자체를 모든 인식의
원천으로 본다. 따라서 합리론은 사유를
객관적 실재로부터도 분리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객관적 실재는 감각적인 직관 속에서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합리론은 사유의 대상인 일반자를 객관적 실재로부터
분리하여 자립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유물론적인
합리론>을 발전시킨 것은 스피노자
(Spinoza)였다. 그러나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헤겔의 경우처럼
합리론은 대개 <관념론적인 형식>으로
나타난다.
양자의 중재
역할을 한 것은 칸트였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지각(직관)과
사유는 인식 속에서 통일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감성(Sinnlichkeit)없이는
어떠한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고, 오성(Verstand)없이는
어떠한 대상도 사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용없는
사유는 공허하며, 개념없는 지각(직관)은
맹목적이다….오성은
아무것도 직관할 수 없고, 감관은 아무것도
사유할 수 없다. 양자가 통일될 때만
인식이 성립한다.”(순수이성비판, B76) 그러나
칸트는 감성과 사유를 서로 분리된 두 개의 능력으로 여겼다.
즉 그는 양자가 함께 작용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자가 유기적으로 상호 결합되어 있지는 않다고
보았다. 그리고 선천적인 직관형식들과
범주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인식론은 합리주의적인
요소를 더 많이 지니게 된다.
사유는
<조건 반사적인 반영 활동의 최고 단계이며
기나긴 생물학적 전사(前史)를
갖고 있다. 고등 동물들, 특히
영장류의 경우에는 조건 반사적인 반영이 <제
1 신호계 Signalsystem>라는 신경
생리학적인 토대 위에서 이미 초보적이고 구상적(具象的),
직관적인 수준의 사유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추상적, 개념적인 사유로의 이행은 점차
발전하는 사회적 노동 활동, 즉 생성중인
인간 사회의 노동 활동을 토대로 해서야 비로소 이루어지며,
그와 공시에 생성되어 가는 언어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이루어 진다. “처음에는 노동, 그리고 점차적으로 그
다음에는 그것과 더불어 언어 ---- 이 두
가지가 원숭이의 두뇌를 인간의 두노로 만든 가장 본질적인
동인이다. 즉 노동과 언어의 영향 때문에
원숭이의 두뇌는, 그것과 아주 비슷하지만
훨씬 더 훌륭하고 완전한 인간의 두뇌로 점차 이행하게 된다.
그리고 두뇌의 계속적인 발전과 더불어 그것과
가장 밀접한 도구인 감각 기관들도 나란히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두뇌와 두뇌의 통제를 받는 감관, 점점
더 명료해지는 의식, 즉 추상 능력 및 추리
능력의 발전이 노동과 언어에 미친 반작용은 늘 양자를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새로운 동인이 되었다.” (Marx/Engels 20, 447-8). 노동,
특히 점점 더 분화해 가는 손의 운동과 기능을
동인으로 하여 인간의 두뇌 속에서는 점차로 사유와 언어
행위의 신경 생리학적인 토대인 <제2신호계>가
형성되었다. 사유는 이미 그 발생에서부터
사회적인 제약을 받는다. 왜냐하면 사유는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실천적으로 지배하고 이용한
결과로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유와 언어는
불가분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다.
“사유의 직접적인
현실태가
<언어>이다” (Marx/Engels 3, 432). 사유는
개념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개념은 말로 나타나는 언어적인 표현을 필요로 한다. 제2신호계는
언어의 협력을 바탕으로 해서만 기능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낱말이 이 체계의 독특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사유는 객관적
실재를 수동적으로 반영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유는 항상 인간이 자신의 자연적,
사회적 환경과 능동적으로 대결하는 과정
속에서 생성되고 또 실현된다. 사유는
<능동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상대적인 자립성>을
갖는다. 사유는 논리적인 법칙에 따라
순전히 개념만을 가지고 작업함으로써 새롭고 참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만일 우리의 전제가
올바르고 우리가 사유 법칙을 그 전제에 올바르게
적용한다면, 거기에 얻어지는 결과는 현실과
들어맞지 않을 수 없다. (Marx/Engels 20, 573).
사유의 이 같은
능력,
즉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인식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은 과학적인 예측을 하고
과학적인 가설과 이론을 세울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는 감각적 경험만을 토대로 했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이 있고 충실하게 객관적 실재를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사유의 자립성은 단지 상대적일 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유는 결국 감각적 경험을
토대로 성립하며, 그 옳고 그름의 궁극적
기준이기도 한 사회적 실천 과정 속에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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