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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Kant, Immanuel (1724.4.22 ~ 1804.2.12)
독일 고전 철학은 칸트와 더불어 시작된다. 칸트는 변증법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의 이론적 바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칸트가 정초한 선험적 관념론은 피히테와 헤겔을 비롯해 그 이후 부르주아 철학에 지속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칸트는 수공업 집안 출신으로 철학, 수학, 신학 등을 공부한 뒤 가정 교사로 일하다가 1755년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그 이후 대학 강사가 되었으며 1770에는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대학에 교수로 취임한 이후,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강의했다. 통상 칸트 철학의 발전 과정은 1770년대 초반까지의 비판 철학 이전의 시기와 비판 철학의 시기로 양분된다. 비판 철학의 시기는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상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 등의 주요 저작들을 통해 그의 비판적 관념론 또는 선험적 관념론이 완성된 시기다. 칸트의 철학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봉건제로부터 자본제로의 이행이라는 역사적 상황에 의해 결정되었다. 유럽의 몇몇 나라들은 18세기에 봉건제로부터 자본제로 이행했으며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의 절정을 이루었다. 칸트 철학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운동이 추상적인 철학의 차원에서 표현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칸트의 철학을 "프랑스 혁명에 관한 <독일적 이론>"이라고 불렀다. 또 엥겔스는 "프랑스의 정치 혁명은 독일의 철학 혁명을 수반했다. 칸트는 라이프니츠의 낡은 형이상학 체계를 무너뜨림으로써...철학 혁명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자연 과학, 특히 뉴턴의 고전 역학은 칸트의 철학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칸트는 자연 과학적 인식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큰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적 인식 자체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비판철학 이전의 시기>에 칸트는 자연과학과 자연 철학 문제를 특히 집중적으로 탐구했었다. 그는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1755)이라는 논문에서, 태양계는 공간상에 흩어져 있는 미세한 물질 입자로 구성된, 회전 운동을 하는 성운 덩어리들로부터 생겨났으며 이것이 뉴턴 법칙에 따라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칸트는 이러한 방식으로 진화론적 생각을 역학 법칙에 따르는 천제 운동의 과학적인 설명과 결합시켰다. 엥겔스는 바로 이 점에서 칸트가 형이상학적 세계상을 극복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보았다. "현재의 모든 천체가 회적 운동을 하는 성운 덩어리로부터 발생했다는 칸트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이래 천문학이 이룩한 가장 커다란 진보였다. (이를 계기로) 자연은 시간적인 역사를 갖지 않는다는 관념이 최초로 흔들리게 되었다...여기서 칸트는 형이상학적 사유 방식과 완전히 일치하는 이러한 관념을 극복할 수 있는 최초의 돌파구를 마련했는데, 이 돌파구는 그가 사용한 증명 근거들이 대부분 오늘날 까지도 타당성을 인정 받을 정도로 과학적인 근거를 지닌 것이었다." 이로써 칸트는 변증법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영원하며 불변적인 세계 질서라는 관념이 우세한 동안에는 변증법적 사고가 전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하계 밖에 존재하는 은하를 가정한다든가 지구 자전이 조파(潮波)의 방해를 받는다는 등의 생각 또한 칸트의 자연 과학적 세계상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칸트는 데카르트와 갈릴레이로부터 출발해 운동과 정지의 상대적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러나 (칸트에게서 발견되는) 변증법적 자연 이해의 단초들은, 칸트 사상 속에 들어 있는 관념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생각들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칸트는 발전의 근원적인 시원을 신(神)에서 찾았으며, 생명체가 엄격히 자연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견해를 옹호하였고, 또한 동시에 유기체를 기계적인 운동으로 소급하는 기계론적 환원에 반대되는 사상을 옹호하였다. 칸트는 <철학에 부정량(否定量) 개념을 도입하려는 시도>(1763)라는 논문에서 논리적 근거와 실재적 근거를 정확히 구별하는데, 이 구별 역시 변증법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여기에서 칸트는 논리적 모순과 실재적 대립을 구별하며, 후자를 실재적 적대라고 명명했다.
<비판적 시기>의 칸트는 이론 철학, 윤리학, 자연철학 등을 적극적으로 완성할 수 있으려면 인간의 인식 능력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가는 <순수이성비판>과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저술된 <프롤레고메나 Proloegomena>(1783)에서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앎이 도대체 가능한지의 여부와 또한 어떻게 가능한지의 여부를 묻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모색한다. 그는 우선 그러한 앎이 경험에서 유래할 수는 없다는 흄의 견해에 찬동한다. 그러한 앎의 원천은 선험적인, 즉 모든 경험에 앞서 주어진 감성의 형식과 오성 인식의 형식에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앎은 단지 판단의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 분석 판단이란 그 술어가 주어 안에 이미 포함된 것만을 포함하는 판단인데, 그러한 판단은 선험적(a priori) 판단이다. 그러나 분석 판단은 참으로 새로운 앎을 전혀 전해주지 않는다. 그에 비하여 술어가 주어 안에 아직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어떤 것을 항상 포함하는 종합 판단은 참으로 새로운 앎을 포함한다. 경험판단은 후천적(a posteriori) 판단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 판단은 새로운 앎을 포함하기는 하나 보편 타당한 앎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칸트의 인식론적 물음은 선험적 종합 판단의 가능성, 즉 보편 타당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앎을 전달하는 판단의 가능성에 집중된다. 칸트는 이러한 물음을 수학, 순수 자연 과학, 형이상학 등과 관련하여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수학과 순수 자연과학이 선험적 종합 판단을 포함한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에, 그러한 학문들에 관련하여 제기되는 물음은 종합 판단이 그러한 학문들 내에서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뿐이다. 그에 비하여 형이상학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물음은 선험적 종합 판단이 형이상학 안에 과연 포함되어 있는가, 그리고 형이상학이 도대체 이론적인 학문으로서 가능한가라는 물음이다. <순수이성비판>의 주요 세 장(章)은 이러한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을 구하고 있다. 즉 초월적 감성론(Transcendental Aesthetic)에서는 감성적 직관이 탐구되며 초월적 분석론(Transcendental Analytic)에서는 오성의 활동이 탐구되며 초월적 변증론(Transcendental Dialectic)에서는 이성이 탐구된다. 그리고 초월적 분석론과 초월적 변증론은 초월적 논리학을 이룬다.
칸트에 따르면 수학의 경우에 선험적 종합 판단의 가능성은 수학적 인식의 대상을 형성하는 선험적 직관형식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러한 직관 형식들에는 외감(外感)의 형식인 공간과 내감의 형식인 시간이 있다. 기하학적 선험 판단의 가능성은 공간의 선험성에 의존하며 대수학적 선험 판단의 가능성은 시간의 선험성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공간과 시간은 객관적 실재가 갖는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직관의 형식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직관과 독립하여 있는 물자체가 어떠한 성질의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인식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칸트 철학의 주관적 관념론적이고 불가지론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그러나 물자체에 관한 칸트의 학설은 주관과 독립해 있는 객관적 실재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유물론적 계기를 동시에 포함한다. 그런데 레닌은 칸트 철학의 근본 특징이 이러한 내적 모순성에 있다고 보았다. "칸트 철학의 근본 특징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화해이고 그것들 사이의 타협이며 그리고 서로서로 모순된 상이한 철학적 방향들을 하나의 체계로 결합시킨 것이다. 칸트가 우리의 표상이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 즉 어떤 물자체에 상응한다는 점을 인정할 때, 그는 유물론자이다. 칸트가 물자체를 인식 불가능하고 초월적이며 피안에 잇는 것이라고 단언할 때, 그는 관념론자로서 등장한다."
이론적 자연 과학에서의 선험적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오성 활동의 선험적 형식을 칸트는 일반적 오성 개념 혹은 <범주>라고 부른다. 범주에는 양의 범주, 질의 범주, 관계의 범주, 양상의 범주가 있으며, 이들은 다시 각각 세 가지 범주를 포함한다. 즉 양의 범주는 단일성, 다수성, 전체성을, 질의 범주는 실재성, 부정, 제한을, 관계의 범주는 실체, 원인, 상호성을, 양상의 범주는 가능성, 현존, 필연성을 포함한다. 칸트는 범주들을 전통적인 형식 논리적 판단표로부터 연역해 낸다. 모든 판단 형식의 근저에는 순수 종합 개념이 놓여 있으며, 이 순수 종합 개념이 각각의 범주이다. 범주의 기능은 직관된 것을 일정한 방식으로 종합적으로 총괄하는 것이다. 각 범주는 사유의 종합을 규정하는 일종의 규칙을 의미한다.이러한 범주적 종합이 이루어짐으로써 직관의 다양은 대상으로 사유된다. 모든 사물은 범주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리고 이 범주는 직관 형식인 공간과 시간처럼 보편 타당하다. 즉, 칸트적인 의미로 객관적이다. 칸트는 이로써 순수 자연 과학에서 보편 타당하고 필연적인 앎이 가능한가를 묻는 물음에 답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범주의 도움을 빌어 사유된 것은 각 범주 안에 포함된 종합 규칙의 보편 타당성 때문에, 역시 보편 타당함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칸트에 따르면 원인 범주의 도움을 빌어 성취된 인과 관계는, 즉 직관된 다양들을 원인 범주 안에 포함된 종합 규칙에 따라 총괄된 것은 객관적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인간의 사유도 이러한 범주의 도움 없이는 사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는 동시에 이러한 범주적 종합 일반과 더불어서만 비로소 합법칙적인 관계가 성립한다는 관점을 옹호한다. 그 결과 법칙을 생산하는 것은 바로 오성이다. 칸트에 따르면 자연은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서 규정되는 한에서의 사물들의 현존이기 때문에 자연도 역시 법칙 부여적인 오성의 산물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오성 활동에 관한 칸트의 구상은 본질적으로 관념론적이다. 동시에 이러한 구상은 이론적 인식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의 단초를 포함하고 있다. 범주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이러한 변증법적 해석의 단초에 속한다. 범주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에서 칸트는 범주들의 각 그룹에서 처음 두 가지의 범주를 상호 대립하는 것으로, 마지막 세 번째 범주를 그것들의 통일로 파악한다. 그러나 인식에 관한 변증법적 구상의 발전에 무엇보다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점은, 칸트가 이론적 인식을 본질적으로 종합적 활동으로 파악하였다는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칸트는 이미 헤겔에 앞서 이론적 인식에 관한 변증법적 구상을 위한 지반을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변증법적 구상은 그 후에 마르크스에 의해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의 상승이라는 이론으로 발전되었다. 칸트에 따르면 학문적 인식은 단지 감성적 직관과 개념적 인식의 통일로서만 가능하다. 또한 그에 따르면 순수 오성 개념의 도식(Schemata)과 생산적 구상력(produktive Einbildungskraft)이 감성적 직관과 개념적 사고를 매개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감성적 직관과 개념적 사고를 그것의 통일성 안에서 파악하고, 그럼으로써 감각주의와 이성주의의 역사적 대립을 극복하려는 칸트의 시도는 그 구상의 관념론적 토대로 말미암아 실패하였다. 오성은 감성 안에 주어진 다양한 종합적 통일을 범주들의 도움을 빌어 성취한다. 그리고 칸트에 따르면 이 종합적 통일의 근거는 통각(Apperzeption)의 선험적 통일이라 불리는 의식의 통일이지 인식 대상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 실재적 통일이 아니다.
선험적 변증론에서 칸트는 이성 인식을 탐구함으로써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이 도대체 가능한지를 묻는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칸트에 있어서 이성 인식이란 인간 사유가 순수 오성의 원칙들에서 출발하고 또 그것들에 의해 인도되어, 개념적 사유를 통일시키고 오성 인식의 피제약자에 대해 무제약자를 발견하기 위하여, 즉 예를 들어 그때그때의 제약된 원인에 대해 무제약적 원인을 발견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이러한 노력을 경주하는 이성은 경험 가능한 한계를 넘어서며, 따라서 초월적(transzendent)으로 된다. 그러한 사유는 학문적인 이론 인식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어떠한 인식도 제공할 수 없다. 이러한 사유는 이념(Idea)으로 나아간다. 이 이념이란 이성 개념을 말하는데, 이 이성 개념에 상응하는 대상은 직관 속에 전혀 주어질 수 없다. 칸트는 영혼의 이념과 세계의 이념 및 신의 이념을 구분한다. 즉 영혼의 이념은 사유하는 주관의 완전한 통일성이며, 세계의 이념은 모든 현상들의 제약 계열의 무제약적 통일성이며, 신의 이념은 모든 현상들 일반의 절대적 통일성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념들은 초월적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는 학문적 인식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문적 인식이란 오성과 직관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이념을 연구하면서 칸트는 이 경우 사유가 필연적으로 이율 배반에 빠지게 됨을 지적한다. 이율 배반은 각각이 똑같은 정도로 증명될 수도 있고 반박될 수도 있는, 서로 모순되는 명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칸트는 수학적 범주와 역학적 범주를 구분한다. 수학적 이율 배반은 세계가 유한한가 혹은 무한한가, 그리고 세계가 단순한 부분들로 구성되었는가 혹은 무한하게 분할 가능한 부분들로 구성되었는가 혹은 무한하게 분할 가능한 부분들로 구성되었는가에 관한 이율 배반적 진술을 포함한다. 칸트에 있어서 이러한 이율 배반의 해소는 정립과 반정립이 모두 다 거짓임을 증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역학적 범주들은, 세계 내의 모든 것이 오로지 필연적인가 아니면 자유에 의한 원인도 있는가, 달리 말해서 세계 안에는 단적으로 필연적인 존재가 있는가 혹은 없는가라는 물음과 관련된 이율 배반적 진술을 포함한다. 칸트는 정립과 반정립을 그때그때 상이한 차원에 병렬시킴으로써 이러한 이율 배반을 해소한다. 그의 윤리학에서 중요한 세번째 이율 배반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해소된다. 즉 경험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필연성, 자연법칙에 완전히 종속되지만 예지적인 이성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칸트는 변증법의 핵심 문제인 모순의 객관성과 필연성에 대한 문제를 이율 배반이라는 형태로 제기했으며, 그에 따라 이 문제를 이율 배반은 사유 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칸트는 이율 배반의 문제를 오직 전통 논리학의 수단에 의해서만 그리고 이원론적 세계관의 토대 위에서만 해소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칸트에 따르면 이성의 이념은 초험적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그 이념에는 구성적 의미 즉 대상들의 인식을 구성한다는 의미는 전혀 없다. 오히려 이성의 이념은 오성의 사용을, 단적으로 그것의 체계적 통일성 안에서만 규정하기 때문에 단순한 규제적 의미만을 가지고 있다.
(참고- (본인) 칸트에게서 직관은 지각과 유사한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