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칸트

헤겔 맑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경제학
Michel Chossudovsky

자주 가는 사이트

자료실 자유게시판 방명록 지적 재산권 반대Copyleft

 

이율 배반 (Antinomy)

원래 이 말은 나름대로의 이유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참>인 것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는 각각의 명제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논리적 모순을 가리킨다.

이율 배반은, 예컨대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명제들 중에 하나가 <참>인 반면, 다른 하나는 사실상 거짓 명제이지만 잘못된 논증을 근거로 해서 <참>인 것으로 간주될 때 생겨날 수 있다. 또 두 개의 증명된, 혹은 <참>인 것으로 간주된 명제들 사이의 모순이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경우에도 이율 배반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집합론의 문제에 소박하게 접근할 때 이율 배반이 생겨나기도 한다. 짝수보다 '더 많은' 자연수가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히 <참>인 주장이다. 다른 한편, 짝수의 집합은 자연수의 집합에 전체적으로 일대일 대응시킬 수 있으며, 다라서 짝수만큼의 자연수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생겨나는 이율 배반은 유한 집합에 대해 타당한 집합론의 법칙들을 무분별하게 무한 집합에 전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집합론은 이러한 이율 배반이 피상적인 착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제대로 정식화된다면, 위의 두 명제는 결코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정식화한 네 가지 이율 배반은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쾨르너의 '칸트' 51-3쪽 참조)

1

정립

세계는 시간상 시초를 가지며, 공간상으로도 한계지어져 있다.

반정립

세계는 시초나, 공간상의 한계를 갖지 않으며, 시간상으로나 공간상으로 무한하다.

2

정립

세계 내에서 합성된 실체는 모두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도 단순한 것이나 단순한 것으로 합성된 것만이 실재한다.

반정립

세계 안의 어떤 합성물도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단순한 것은 세계 속에 전혀 실재하지 않는다.

3

정립

자연 법칙상의 인과성은 세계의 모든 현상들이 거기에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인과성이 아니다. 현상을 설명하자면 그 외에도 자유에 의한 인과성을 상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정립

자유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오직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긴다.

4

정립

세계에는 그것의 부분으로서, 혹은 그것의 원인으로서 단적으로 필연적인 존재가 있다.

반정립

세계 안에서든, 혹은 세계 밖에서든 세계의 원인인 단적으로 필연적인 존재는 일반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칸트에 의해 정식화된 첫번째 이율 배반은, 그 동안 무엇보다도 상대성 이론을 통해 획득된 시간과 공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들에 비추어 볼 때 근거없는 것임이 입증되었다. 칸트의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이율배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헤겔도 일찍이 인식했던 바와 같이, 사실상 불충분하게 분석된 변증법적 모순이다.

<형식 논리학>에서 말하는 <좁은 의미>의 이율 배반은 일정한 논리 체계 속에서 명제들이 그것에 대한 논리적 부정과 함께 나타날 때 성립한다. 이것은 <구문론적 이율 배반>과 <의미론적 이율 배반>으로 구분된다.

<구문론적 이율 배반>은 논리 계산의 테두리 안에서 연역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된 간단한 예, 즉 소위 <러셀의 이율 배반>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러셀은,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집합들을 원소로 하는 하나의 집합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집합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자연수의 집합은 자기 자신을 원소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수의 집합의 원소들은 수(數)들이지만, 자연수의 집합 그 자체는 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자연수의 집합은 앞에서 이야기한 집합(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집합들을 원소로 하는 하나의 집합) M의 원소가 된다. 이제 집합 M이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는가를 따져 보자. 만약 M이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가진다면, 가정과는 반대가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전제에 따라 결코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M이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정의에 따라 집합 M에 속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게 된다. 러셀의 집합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집합 M의 원소를 X라 할 때, 러셀의 정의는

X∈M≡~(X∈X)

가 된다.

이제 집합 M자체에 대해서 어떻게 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집합의 변수 X에 집합M을 대입해 보자. 그러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M∈M≡~(M∈M)

이리하여 우리는, 하나의 명제가 자신의 논리적 부정과 동치임을 말해 주는 논리적 관계를 얻었다. 임의의 원소들로 집합을 형성하는 것이 허용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현대 수학의 기초 연구와 형식 논리학은 이와 같은 구문론적 이율 배반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 예를 들자면 소위 유형 이론(類型理論, Theory of types)을 만들어 냈다.

<의미론적 이율 배반>은 다른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진리','보편 타당성' 등과 같은 의미론적 개념과 관련된다. 이미 그리스인들이 알고 있던 것으로서 가장 유명한 의미론적 이율 배반은 소위 거짓말쟁이의 이율 배반이다.(이는 크레타의 이율 배반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고대 크레타 섬 주민들이 대단한 거짓말쟁이들이었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크레타 사람이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따라서 크레타 사람이 말한 것이 이 명제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할 때, 거짓말쟁이의 이율 배반이 성립한다. 이와 같은 명제는 그 명제가 실제로 <거짓>이라는 사실을 전제할 때에만 <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논리적 모순이다. 이 명제가 <거짓>이라면, 그 때에는 크레타 사람이 진실을 말했다는 것이므로 이 명제는 <참>이 된다.(크레타 사람은 바로 그가 말한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론적 이율 배반은 일련의 다른 이율 배반과 마찬가지로 대상 언어와 메타 언어의 구별에 주의함으로써 해소된다. <하나의 명제는 자신의 진리치에 대해 아무것도 진술할 수 없다>. 한 명제의 진리에 대한 진술은, 명제 자체를 정식화하는 대상 언어에 대한 메타 언어에 속한다.이러한 의미에서 크레타 사람의 진술은, 논리학적으로 보면, 명제가 아니다.

지난 100년 동안 수많은 구문론적, 의미론적 이율 배반들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유형의 구분, 대상 언어와 메타 언어의 구분 등과 같은 보조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이와 같은 이율 배반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형식 논리학과 수학의 기본 구조에서 나타나는 해소될 수 없는 모순들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Home

칸트

헤겔 맑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경제학
Michel Chossudovsky

자주 가는 사이트

자료실 자유게시판 방명록 지적 재산권 반대Copyleft
Hosted by www.Geocities.ws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