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교회와 국가에 대한 사상의 발전

- 다니엘 2:31-45 해석을 중심으로 -



안인섭



1. 서론


1.1. 어거스틴1)


현대 교회가 다가오는 시대를 준비하며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고 할때마다, 교회사적으로는, 기독교 전통은 그와 유사한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워 왔는지를 고찰하게 된다.2)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거스틴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기독교 전통에서 그 중심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인물이 어거스틴이라는 데에는, 별 이의가 없기 때문이다.3)

최근의 어거스틴 연구의 성과는, 그를 “교회의 신학자”로 이해하도록 인도해 주고 있다. 특히 디프약 박사에 의해서 발견되어서 1980년대에 편집된 “디프약 편지”4)나 돌보에 의해서 발굴되어 1990년대에 출판된 “돌보의 설교문”5)들이 그려주는 어거스틴의 새로운 모습은, 경직된 신학자로서의 어거스틴이 아니라, 후기 로마 제국의 북아프리카의 주교로서의 상이다.6) 교회 정치와 사회의 현실에 깊이 관계했던 목회자로서의 어거스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래의 어거스틴 탐구의 학문적인 경향과 관련해서 고려해 볼 때, 그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사상은 중요한 연구 테마임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1.2. 교회와 국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가르침에 근거하는 기독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종말론성의 긴장속에서 역사적으로 발전해 왔다. 교회와 국가라는 두개의 수레 바퀴는, 서양뿐만 아니라 현대의 국제적인 세계속에서도, 상호 역동적 관계속에서 인간의 사회적, 종교적 삶의 조건을 실어 나르기 위한 두 개의 중요한 축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때, 기독교의 다양한 교회 전통들 중에서, 국가에 의해서 극심한 핍박을 받았던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는가 하면, 국가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던 교회 운동이 있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국가와 그 국가의 후원을 입은 분파 모두로부터의 박해를 경험했던 교회 그룹이 존재하기도 했다.7) 더군다나, 현대인들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 경제, 사회적 그룹들이 한 국가 안에 뿐 아니라 복잡한 국제 정치적 역학속에서 공존하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다양한 양태로 국가들과 관계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 존재하고 있는 현대 교회가 그 고유의 사역을 감당하려고 할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국가와의 관계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면,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더욱 복잡한 양상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국가 관계론에 대한 사상은 여전히 그리고 심지어 점차 중요한 교회사 연구의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다니엘 2:31-45


어거스틴은 교회와 국가에 대한 그의 사상을 한 권의 책에 체계적으로 요약하여 진술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8) 그의 사상은, 전 생애를 통해서, 특히 교회의 주교였던 그가 다양한 목회적 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상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적합할 것이다.9) 그러므로 어거스틴의 사상, 더구나 급변하는 후기 로마제국 시대를 살면서 사역했던 그의 교회와 국가에 대한 사상의 이해는, 그 자신의 시대의 역사적 상황의 추이와 맞물려서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


본 논문은 어거스틴의 다니엘 2:31-45의 사용에 나타난 그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사상의 발전을 고찰하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다니엘서 주석을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 논문의 연구는 다음의 세가지 방법론을 취하게 될 것이다. 1)첫째로, 그의 전 작품들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그의 다니엘 2장 인용을 가능한 한 많이 찾아내며10) 2) 둘째로, 그가 다니엘 2장을 사용했던 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분류하는 것이다.11)  3) 세 번째 단계는, 그의 해석을 분석해 내어 그의 사상의 발전을 추적하는 것이다.

다니엘서 2장은,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유대인을 헬라화하려는 정책에 맞서서, 유대인의 하나님이 세계 역사를 지배하며 유대인들의 지혜가 이교도들의 그것보다 우월함을 설명해 준다. 다니엘 2장의 해석은 로마의 콘스탄틴으로부터, 비잔틴의 유스티니안 황제사이에서 기독교 저술가들이 각각 그들의 정치적 문화적 콘텍스트에서 교회와 국가에 대한 사상을 어떻게 반영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인 것이다.12) 그러므로 어거스틴의 다니엘 2장의 해석은, 그의 교회와 국가의 사상을 보여주는 한 창문이 될 것이다.

꿈에 왕이 한 신상을 보는데,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며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다. 이는 각각 바벨론, 메데아, 페르시아 및 그리이스를 대변한다.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뜨인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지게 되며,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된다고 하는 내용이다.

본 논문에서는, 어거스틴의 작품들의 역사적 분석에 근거해서, 그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사상을 세 단계로 고찰할 것이다.13) 첫 단계는 그가 카톨릭 교회의 주교로 서품된 395년 이전이며, 두 번째 단계는, 396년부터, 도나티스트에 대한 칙령이 반포된 405년 사이의 기간이다. 세 번째는, 고울 지방을 유린했던 반달족의 침입이 있었던 406년 이후의 시기가 그것이다.


I. 385년 이전 (카톨릭 교회의 주교가 되기 이전)


1. 다니엘 2:34-35.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3,4.14) (392년 기록)


II. 396년 - 405년


2. 다니엘 2:34-35. Reply to Faustus the Manichaean, 13,13.15) (398년)

3. 다니엘 2: 47. The Catechising of the Uninstructed, 21, 37.16) (400년)

4. 다니엘 2:35. The Letters of Petilian, The Donatist, 2, 38, 90.17) (400년)

5. 다니엘 2:35. The Letters of Petilian, The Donatist, 2, 70, 158.18) (400년)


III. 406년 이후 (로마가 반달족의 침입을 받은 이후)


6. 다니엘 2:34-35. Letter 164, 5,16.19) (written 414/415)

7. 다니엘 2:34-35. Tractates on the Gospel of John, 4,4.20) (416/417 기록. 407-408에 기록 시작)21) 

8. 다니엘 2:34-35. Tractates on the Gospel of John, 9, 15.22) (416/417 기록. 407-408에 기록 시작)

9. 다니엘 2:34-35. Tractates on the First Epistle of John, 1, 12.23)  (416 기록. 407-408 기록 시작)24)

10. 다니엘 2:35. Tractates on the First Epistle of John, 3, 6.25) (416 기록. 407-408 기록 시작)


다음에 언급되고 있는 어거스틴의 다니엘 2장의 인용은, 그 작품들의 기록 연대가 불확실하다.


11. 다니엘 2:34-35.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43, 4.26) ( 392-418)

12. 다니엘 2:34-35.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45, 30.27) (392-418)

13. 다니엘 2:35.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46, 11.28) (392-418)

14. 다니엘 2:35.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48, 2.29) (392-418)

15. 다니엘 2:48.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62, 4.30) (392-418)

16. 다니엘 2:34-35.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99, 11.31) (392-418)



2.1. 395년 이전


어거스틴의 시편주석 3장에 등장하는 다니엘서 2장의 사용은, 그것이 어거스틴이 비숍이 되기 이전인 392년에 기록된32) 유일한 다니엘 2장의 인용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본문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는 그의 성산에서 나를 들었다.’우리는 선지자가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자라서 태산을 이루었다.’라고 기록한 바와같이, ‘주께서 친히 그 산에서 불러졌다고 듣는다.’33)


이 짧은 인용에서, 주는 거룩한 산에서 불리워진다. 어거스틴은 이 산을 돌의 성장과 관련시켜서 설명하고 있다. 다니엘 2장을 인용하면서, 그는 돌이 산의 크기까지 자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있다. 구약성서의 다니엘 2장은, 그 돌이 국가를 의미했던 신상을 부순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어거스틴은 그 돌이 “부순다(crushing)” 그리고 “친다(striking)”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는 단지 돌의 성장이라고 하는 성격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 돌을, 그가 후에 기술한 바와는 달리, 세상및 국가와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주석을 통해서 볼때, 어거스틴은 적어도 392년까지는 국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후에 그가 다니엘 2장을 인용한 것과 비교해 볼때, 교회의 본성에 대한 사상도 아직은 발전되지 않은 듯이 보인다.

 

2.2. 396년 - 405년


어거스틴은 398년에 기록된 Relpy to Faustus the Manichaean이란 작품에서, 태산을 이룬 돌이 성장한다고 하는 그의 초점을 더욱 강조한다. 다니엘 2: 34-35를 이용하면서, 그는 참된 도시가 작은 돌에서 성장한 산 위에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교회는 ... 눈에 두드러지게 보여진다”고 기록한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그리스도를 가시적인 교회와 연결시키기 시작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진정한 도성은 산 위에 있다. 그리고 그 산은 우리가 다니엘 선지서에서 읽는 바처럼, 작은 돌에서부터 온 세상을 가득 채울때까지 자라났다.34)


어거스틴은, 그의 다니엘 2장 설명에서, 392년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작은 돌의 성장을 묘사하기 위해서 “자라났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398년경에는, “온 세상을 가득채웠다”라는 표현을 추가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다니엘 2장의 인용에서 처음 등장하는 일이다. 세상에 있는 그 돌과 관련해서 예언의 성취라는 개념이 여기에서 나타난다. 그는 아마도 로마 세계 안에서 교회의 확장을 의도한 듯하다. 그렇지만, 다니엘 2장에는, 국가의 파멸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구절을 여기에서 인용할 때에는, 일련의 지상의 국가들의 멸망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일한 현상이 어거스틴의 The Letters of Petilian, The Donatist 에서도 발견된다. 400년에 기록된 이 작품에서, 어거스틴은 카톨릭 교회의 확장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니엘 2장 35절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에 의해서, 우리는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전 세계로 확장되는 교회의 성장을 보게 될 것이다. 어거스틴은 도나티스트주의자인 페틸리안을 반박하는데, 왜냐하면, 그는 작은 돌에서 성장해서 전 세계에 충만했던 산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5) 여기에서 어거스틴은 다니엘 2장을 인용하면서, 전 세계로 확장되는 카톨릭 교회에 대한 발전된 비젼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어거스틴의 주석에서는, 돌에 의해서 부수어진 신상에 대한 묘사는 전혀 나타나고 있지 있다. 다니엘 2장에서 신상의 파멸은 곧 지상 국가들의 파멸을 의미했었는데 말이다.


셋째로, 동일한 편지에서, 도나티스트주의자인 페틸리안이 어거스틴에게 평화가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다니엘 2장의 본문으로 대답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평화는 돌에서 자라서 전 세계에 충만하게 되는 산이신 그리스도안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그 산위에 존재하는 도성, 즉 즉 카톨릭 교회는 숨겨질 수 없다고 강변한다.36)  이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어거스틴은 로마세계에서 보다 많은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었던 카톨릭 교회의 성장에 신뢰감을 보여주고 있다.


넷째로, 또한 400년에 기록된 다니엘 2장의 인용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발견할 수 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예루살렘과 바벨론, 이 두 도성은 종말때까지 서로 혼재해 있게 된다. 다니엘 2장을 인용하면서, 그는 “교회는 마치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포로로부터 자유하게 되듯이, 이 세상의 혼돈으로부터 구원될 것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다니엘 2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포로 상태에 있었던 바벨론의 왕들이 어떻게 “한 분이신 진정한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가?”라고 우리의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37) 그의 설명에서, 교회는 이 세상과 적대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어거스틴은 또한 바벨론의 왕들과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대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비록 그가 다니엘 2장을 인용해서, 교회에 대해서 국가가 적대적임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상의 국가들이 “부수어졌다”라는 표현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 406년 이후에 기록된 어거스틴의 작품들에서는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했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396-405년 동안에, 그는 국가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여전히 견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위에서 고찰한 바처럼, 어거스틴이 다니엘 2장을 인용한 네 곳에서,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밀접한 관계성 속에서 세상에 확장되는 교회라고 하는 그의 성숙한 기독론적 교회론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비록 교회와 국가의 반대성(antithesis)을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도 그 돌이 신상을 "부수고" “치는”것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니엘 2장은 그 신상, 즉 국가의 파멸을 강조했지만, 어거스틴은 그렇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가능한 답변은, 어거스틴이 이 기간동안에 아직도 교회를 위한 국가의 긍정적인 기능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어거스틴의 사상적 발전 과정에서, 그가 395년에 북아프리카의 히포의 로마 카톨릭 주교로 서품받은 것을 주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주교으로서, 그는 북아프리카 기독교권에서 발생되는 일들과 문제들에 책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는 카톨릭 교회를 변호하기 위해서 사역을 하고 작품을 써야만 했다.38) 

그 당시, 북아프리카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은 매우 급격한 변환기였다. 이 시기에는,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아프리카의 백작이었던 길도(Gildo)의 반란(386-398)이 발흥하고 있었다. 이 반란은 옵타투스(Optatus)의 지도력하에 있었던 도나티스트 운동과 결합되었다. 이 무렵, 북아프리타의 카톨릭 교회는 이 운동에 의해서 강력하게 도전받고 있었다.39) 쉽게 생각될 수 있는 것처럼, 어거스틴과 그의 교회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의지할 수 있는 조직체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북아프리카의 종교적 상황은 왜 어거스틴과 그의 신자들이 로마 제국에 그들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더구나, 길도의 패배는 카톨릭 교회를 후원하는 로마 제국의 역할에 대해서 강한 기대감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마침내, 405년에 발표된 도나티스트에 대한 연합칙령(Cod Theod xvi, 5, 8)은 어거스틴에게 로마 황제에 대한 신뢰감을 더욱 주었는데,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도나티스트 그룹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40)

그러므로, 우리는 적어도, 반달족이 소위 기독교 제국이라고 불리울 수 있었던 로마를 침입하여 유린하기 시작했던 406년 이전에는, 어거스틴이 다니엘 2:31-45를 인용할 때, 신상이 부수어진다든지, 그 신상이 돌에 의해서 깨뜨려 진다는 표현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2.3. 406년 이후


어거스틴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사상의 두번째 전환점은, 406년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반달족이 로마로 침입해 왔던 때이다. 몰락해 가는 “기독교 제국”을 목격하면서, 로마 카톨릭의 주교였던 어거스틴은 교회와 국가에 대한 문제를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사상에서, 강조점의 전환이 또 한번 보여지는 것이다.


우선, 416년에 기록되었던 Homilies of the Gospel of John(407-408년에 기록 시작)을 보면, 어거스틴의 발달된 교회와 국가의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 1:19-33의 설명에서,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기를 원했을 때, 요한의 증거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한 돌, 즉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의 눈앞에서 멸시를 받으셨다. 그러나 그 돌은 자라서 커다란 돌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온 세상의 표면을 뒤덮었다.41)  이와같이 설명하면서, 어거스틴은 교회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의 왕국과 동일시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계속 서술한다.


“ ... 왜냐하면, 그 돌이 아직은 자라서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은 당신의 나라, 곧 교회를 보여주셨다. 그 교회와 더불어 주님은 온 세상을 충만하게 채울 것이다.”42)


어거스틴에 의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국이다. 이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모든 표면을 덮을 것이다. 국가와 관련한 그의 교회에 대한 개념은 전보다 훨씬 더 강조되었다.43)  우리는 그가 교회의 위상을 강화하려고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더구나, 어거스틴에게는 교회, 즉 로마 카톨릭 교회를 부인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자신 되시는 산을 거스르는 것이된다.44)  어거스틴의 사상에서 카톨릭 교회의 권위가 한층 강조되고 있다. 카톨릭 교회를 부인하는 자는 가루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있어서 어거스틴은 교회의 위치를 이전보다 더욱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예는, Homilies of the Gospel of John의 요한. 2:1-11에서 발견된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으나 예수께서 6 돌항아리에 물을 채웠다. 어거스틴의 설명에 의하면 돌 항아리에 나타나는 돌은 다니엘이 기록했던 것처럼 산에서 뜨인 돌이었다. 이 돌은 자라서 큰 산이 되었고, 마침내, 온 세상을 덮었다. 그러므로 건축자에 의해서 버려졌던 돌은, 모퉁이의 머리가 되었다. 이 돌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대인들에 의해서 버려졌으나, 그의 왕국은 세상을 점유할 것이라고 어거스틴은 설명한다.

어거스틴의 이전의 주석과 비교해 부면, 다니엘 2:34-35의 사용에 있어서 중요한 변이가 발견된다. 이전의 다니엘 인용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그러나 원래 다니엘 2장에는 있는 한 문장이 덧붙여 진다. 그것은 지상의 왕국의 파괴에 대한 언급이다. 이것은 그의 발전된 개념을 반영해 준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리고 모든 지상의 왕국들을 부술 것이다...45)


이 구절은, 비록 덧붙여진 문장이 길지는 않지만, 국가에 대한 어거스틴의 태도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이다. 반달족들이 카톨릭 교회의 후원자였던  로마를 침략하여 유린했을 때인 406년까지는, 어거스틴은 지상의 왕국이 파괴될 것이라는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거스틴의 다니엘 2장의 사용에 있어서 두드러진 발전으로 언급될 수 있다.


어거스틴의 세 번째 다니엘 2: 31-35인용은 더 많은 주의를 필요로 하는데, 왜냐하면, 그는 다니엘 2장을 세례의 의미와 연결시켜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414 혹은 415에 기록된 letter to Evodius에서 어거스틴은 노아의 때의 홍수와 돌을 연결시켰다.46) 어거스틴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신자들에게 그것은 세례의 유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신자들에게는 파멸의 상징이었다. 어거스틴은 이 노아의 홍수의 이중 의미를 돌 이야기와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 돌은 그리스도를 의미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신자들에게는, 돌은 기반이 되는 돌이며, 불신자들에게는 거스르는 돌이었다.47)

그러므로 414-415의 어거스틴의 사상에서, 다니엘 2장에 기록된 돌과, 이 돌 위에 세워진 교회는 명확하게 삶과 죽음의 분수령이었다. 우리가 보듯이,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교회의 위치는 그 이전보다 더욱 강조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넷째로, 416년이나 그보다 조금 이후에 기록된 그의 Homilies on the Epistle of John to the Parthians the first Epistle of John 1:1-2:11에서 어거스틴은 다니엘 2: 31-35를 인용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돌’은 인간적인 노력 없이도 유대인들의 왕국으로부터 오신 그리스도가 아닌가? 그 돌은 모든 지상의 왕국들, 즉 우상들과 악마들의 모든 지배들을 산산이 부수지 않으셨던가? ... 그 누가 그에 대항함으로 그의 머리를 깨뜨리시는가?48)


어거스틴의 설명에 의하면, 산에서 뜨인 돌이 큰 산을 이루었으며, 모든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았듯이, 그는 또 한 문장을 덧붙였는데, 그 돌이 "지상의 모든 나라들을 산산이 부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그는 어떤 것도 그 돌을 깨뜨릴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이런 표현들은 406년 이전에 기록된 어거스틴의 다니엘 2장의 해석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어거스틴은 그 돌에 의해서 깨어졌던 국가들에 대해서 묘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묘사는, 교회의 권위에 대해 훨씬 강조된 그의 태도와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련의 지상의 국가들의 파멸에 대한 어거스틴의 묘사가, 적어도 406년 이후에는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섯째로 요한1서 2:18-27의 설명에서, 그는 다니엘 2장에 나오는 돌에 대한 개념을 해석한다.


그리스도의 도래는 유대인들의 소망이었다. 그가 낮아지심으로 오셨다고 해서 간과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돌은 작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에 걸릴 것이며 부수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돌은 자라서 큰 산을 이룰 것이다.” 성경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는가? 이 돌에 걸리는 자는 부수어질 것이며, 누구에게든지 이 돌이 지나간다면 그 돌은 그를 가루로 빻을 것이다.” 우리는 그 단어들의 차이점을 주목해야만 한다. 걸리는 자는 부수어질 것이다. 그 돌이 지나가는 자는 가루로 빻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낮게 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거스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심판을 위해서 존귀하게 되실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거슬리기만 하면, 그는 그를 가루로 빻아버릴 것이다. 그가 초림하셨을 때에는 가루로 만들지 않으셨지만, 그는 그의 재림의 때에는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는 낮아지셨을때는 거슬리지 않으셨지만, 높은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간략하게 말해서, 형제들아 당신들이 들은 것처럼, 그는 낮아지셨을때 거스리지 않으셨으며, 높은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악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거스르는 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던, 그들에게는 고통스러운 것이다.49)


어거스틴이 위에서 지속적으로 묘사하듯이, 점점 자라나서 산이 되는 돌이 강조되고 있다. 이 돌, 즉 그리스도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은 부수어 질 것이고, 가루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어거스틴은 다니엘 2장을 설명할 때, "걸려 넘어진다"는 단어와 "부수어진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들은 406년 이전의 어거스틴의 다니엘 주석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위에서 고찰한 바와같이, 어거스틴은 다니엘 2장에 몇몇 구절들을 덧붙임으로 그의 사상을 계속 발전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406년 이후에, 그는 이전보다 더 자주 단 2의 이야기를 사용하면서 많은 설명을 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어거스틴은 다니엘 2장의 해석에서 국가의 몰락을 말하고 있었던 몇몇 문장들을 첨가해 갔는가? 왜 그는 이전과 비교해서, 특히 바로 이 시기에, 그의 교회에 대한 개념은 보다 강화되었으면서도, 국가에 대해서는 보다 부정적인 태도가 나타나는가? 이런 현상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서 다음의 역사적인 분석이 대답으로서 설득력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405년에 도나티스트에 대한 연합칙령이 발효되었고, 제 10차 카르타고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제 로마 제국내에서 카톨릭 교회의 위치는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로마 사회 그 자체가 406년 이래로 반달족의 가혹한 침임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들은 교회에 대한 도전을 야기시켰는데, 왜냐하면, 로마 제국은 카톨릭 국가로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로마 기독교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로마 카톨릭의 주교였던 어거스틴은 그의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기독교 제국의 몰락에 대해서 설명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시기와 그 이후에 기록된 작품들에서, 어거스틴의 다니엘 2장의 사용을 연구할 때, 이 구절들의 해석과 그 강조점들이, 그의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할 때 변화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거스틴은 다니엘 2장을 사용하면서, 지상의 국가들은 부수어질 것이라고 묘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50)


3. 결론.


그러므로 위에 근거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어거스틴의 교회와 국가에 대한 사상이 보다 심화되었던 때는 395년 경에 그가 비숍으로 봉직하게 된 이후였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같이, 392년에 인용된 단 하나의 단 2의 인용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15인용들이 395년에 히포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교로 서품받은 이후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카톨릭 교회의 주교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성경과 교회에 대한 그의 사상이 깊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둘째로, 교회와 국가에 대한 그의 사상에 관한 한, 어거스틴은 406년에 두번째의 발전을 가져왔다. 405년에 선포된 도나티스트에 대한 연합 칙령의 기간까지, 어거스틴은 국가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카톨릭 국가로서의 로마 제국에 의존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단지 그리스도위에 기초하고 있는 교회의 확장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었다. 산에서 뜨인 돌은 전 세상을 충만하게 채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다니엘 2장을 사용할 때, 그 돌에 부수어질 지상의 국가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렇지만, 카톨릭 교회의 신실한 수호자였던 로마 제국은 반달족의 침입에 의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교로서, 어거스틴은 이 역사적 딜레마를 설명해야만 했다. 이런 콘텍스트에 의해서 동기 부여되어, 어거스틴은 교회에 대해서는 보다 강화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국가에 대해서는 점차 부정적인 태도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다름 아닌 바로 406년 이후, 즉 반달족에 의한 로마의 유린이 시작된 이래로, 그는 다니엘 2장에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상의 국가들은 그 돌에 의해서 부수어 질 것이다”라고 말이다. (*)


< Abstract >


Augustine's Thoughts about Church and State: A Development

- His interpretations of Dan 2:31-45


In-Sub Ahn (Dr. Theol. Chongshin University)


In a globalized world, as well as in multicultural States, it becomes increasingly necessary to investigate the Church's relation to the State. It is natural that when researchers study the relationship between Church and State from a historical perspective that they will turn to Augustine to see how he, as a centre of the Christian tradition, dealt with the same issues. Recent research into Augustine shows a tendency to interpret Augustine as man of the Church.

Augustine's use of Dan. 2: 31-45 shows us the development of his thoughts about Church and State. When we find as many references of Dan. 2 as possible and date the writings, we can see the development of Augustine's teaching on Church and State. Firstly, before 395, when he became a bishop of the Catholic Church. Secondly, between 396 and 405 in which period the edict against the Donatists was issued. And thirdly, after 406 when the invasion of the Vandals in Gaul took place.

After Augustine's dedication as a bishop around the year 395, he seemed to modify his thoughts on Church and State. He deepened his view of the biblical texts when he started to work as a bishop of the Catholic Church.

Concerning his ideas about Church and State, Augustine showed a significant development around 406. Prior to the issue of the Edict of unity against the Donatists in 405 (Cod Theod xvi, 5,8), he still seemed to hold a positive attitude toward the State and to view the Roman Empire as a Catholic State.

However, the Roman Empire, which was a faithful guardian of orthodox Christianity, seemed to decline in the face of the invasion of the Vandals. Inspired by this new historical context, he, as a bishop of Roman Catholic Church, began to adopt a negative position toward the State. Therefore, it is after 406 that he began to use the sentence  "the earthly kingdom will be broken by the stone" which he had taken from Daniel 2.


1) 본 논문을 위해서 사용된 어거스틴의 라틴본들은 다음과 같다. (1) Corpus scriptorum ecclesiasticorum latinorum (=CSEL). Vienna: Academia Litterarum Caesarae Vindobonensis, 1866 ff. (2) Corpus Christianorum, Series Latina (=CCL). Turnholti, Typographi Brepols, 1953 ff. (3) Patrologia Latina Cursus Completus(=PL). ed. J.-P. Migne. 221 vols. Paris: Vives, 1844-55. (4) Dolbeau F. ed. Augustin D'Hippone: Vingt-six sermons au people d'afrique (Paris: Institut d'Etudes Augustiniennes, 1996). 한편 다음의 영어 번역본들이 참조되었다. (1) A Select Library of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ed. Philip Schaff and Henry Wace. First Series, vol 1-8. New York: Christian Literature Co., 1886-1900. Reprinted. Massachusetts: Hendrickson Publishers, 1999. (2) The Works of Saint Augustine: A Translation for the 21st Century. New York: New City Press, 1990 ff. (3) The Fathers of the Church.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47 ff.


2) 중세 기독교 관점에서 본 새 시대의 전망을 위해서는 다음을 보라. W. Otten, "The Role of Theology in the third Millennium: Views from the Perspective of Medieval Christianity," in In Quest of Humanity Globalising World. Dutch Contributions to the Jubilee of Universities in Rome 2000, (eds.) W. Derkse, J. van der Lans and S. Waanders (Leende: Damon, 2000), pp. 321-338. 초기 기독교 시대의 기독교와 정치와의 관계를 위해서는 다음을 보라. W. Otten, "Early Christianity between Divine Promise and Earthly Politics," in Religious Identity and the Invention of Tradition: Papers read at a NOSTER Conference in Soesterberg, January 4-6, 1999, (eds.) J.W. van Henten and A. Houtepen (Assen: Royal van Gorcum, 2001), pp. 60-83.


3) W. Otten, "Augustine on Marriage, Monasticism, and the Community of the Church," Theological Studies vol. 59 (1998), p. 385.


4) 각 번호에 별표를 붙임으로 이 새롭게 발견된 어거스틴의 편지들은 이전의 편지들과 구별시킨다. Ed. J. Divjak, CSEL 88 (Vienna: Tempsky 1981). 영어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R.B. Eno, Saint Augustine, Letters VI (1*-29*). Fathers of the Church Vol. 81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89).


5) F. Dolbeau (ed.), Augustin D'Hippone: Vingt-six sermons au people d'afrique (Paris: Institut d'Etudes Augustiniennes, 1996). 영어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F. Dolbeau, Sermons: Newly Discovered Sermons (New York: New City Press, 1998) [The Works of Saint Augustine: A Translation for the 21st Century].


6) P.R.L. Brown, Augustine of Hippo: A Biography(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2000), pp. 441-473.


7) A.J. Jelsma, Frontiers of the Reformation: Dissidence and Orthodoxy in Sixteenth-Century Europe (Aldershot/Brookfield USA/ Singapore/ Sydney: Ashgate, 1998), p. 1. 옐스마 교수의 이 저서는, 그의 화란어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것이며, 화란어 원서는 다음과 같다. Zonder een Dak Boven het Hoofd: In het grensgebied tussen Rome en Reformatie (Kampen: Kok, 1997).


8) 다음을 참조하라. H. Chadwick, Augustin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6/1996), p. 106.


9) Augustine, Retractationes, prologue 3. “... 내 작품들을 기록된 순서대로 읽는 사람들은, 내가 그 책들을 저술하면서 어떻게 사상적 발전을 가져왔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FC, LX, 5). 그 예로서, 다음의 논문과 책들을 보라. Cranz, F.E., "The Development of Augustine's Ideas on Society Before the Donatist Controversy," Harvard Theological Review vol. 47 (1954) pp. 255-316. Reprinted in Augustine: A Collection of Critical Essays (ed.) R.A. Markus (New York: Doubleday & Company, 1972) pp. 336-403. ; J.P. Burns, The Development of Augustine's Doctrine of Operative Grace (Paris: Etudes Augustiniennes, 1980)


10) 어거스틴의 다니엘 2장 인용의 직접 인용을 위해서는, 주로 NPNF의 텍스트들이 다른 텍스트들과 함께 사용되었다.


11) 어거스틴의 작품들의 연대를 위해서는 다음의 책들이 참조되었다. P. Brown, Augustine of Hippo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2000). A.D. Fitzgerald, Augustine through the Ages, (Grand Rapids, Michigan: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9).


12) S. de Boer, "Welk dier was Rome?," in: S. de Boer and M.B Pranger (eds.) Saecula saeculorum: Opstellen aangeboden aan C.W. Moennich (Amsterdam: Athenaeum-Polak & Van Gennep, 1982) pp. 98-141.


13) 크랜츠는 그의 연구 후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어거스틴의 정치적 사상은 386년에서 400년 사이에 심대하게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을 참조하라. F.E. Cranz, "The Development of Augustine's Ideas on Society Before the Donatist Controversy," Harvard Theological Reviewvol. 47 (1954) pp. 255-316. 그러나 필자는, 크랜츠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보다 세부적이고 보다 역사적인 방법에 의해서, 어거스틴의 정치 사상은 3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하게 되었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14) PL 36. p. 393.


15) CSEL 25. p. 393.


16) CCL 46. pp. 161-162.


17) CSEL 52. p. 75.


18) CSEL 52. p. 101.


19) CSEL 44. p. 536.


20) CCL 36. p. 32.


21) 다음을 참조하라. P. Brown, Augustine of Hippo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2000), p. 280.


22) CCL 36. p. 98.


23) PL 35. pp. 1986-1988.


24) 참조. P. Brown, Augustine of Hippo, p. 280. 이 설교들은 407년에 행해졌다. 다음을 보라. A.D. Fitzgerald, "Epistulam Johnnis ad Parthos tractatus", in: Augustine through the Ages, pp. 310-311.


25) PL 35. p. 2000.


26) CCL 38. pp. 474-481.


27) CCL 38. pp. 493-517.


28) CCL 38. pp. 517-529.


29) CCL 38. pp. 538-550.


30) CCL 39. pp. 772-793.


31) CCL 39. pp. 1379-1392.


32) 어거스틴의 시편 주석 1장에서 32장까지는 약 392년에 기록되었다. 그렇지만 시편의 다른 주석들은 대략 418년 경에 기록되었다. 다음을 보라. M. Cameron, "Enarrationes in Psalmos," in: Augustine through the Ages : An Encyclopedia, (ed.) A.D. Fitzgerald (Grand Rapids, Michigan / Cambridge: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9), pp. 290-296. 


33) Augustine,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3, 4. "et exaudivit me de monte sancto suo: montem quidem ipsum Dominum per Prophetam dictum habemus, ut seriptum est, lapidem praecisum sine minibus crevisse in magnitudinem montis."


34) Augustine, Reply to Faustus the Manichaean, 13, 13. "cum illa civitas super montem sit, quem montem, nisi eum. Qui secundum prophetiam Danihelis ex paruulo lapide crevit et factus est mons magnus, ita ut inpleret universam terram?"


35) Augustine, The Letters of Petilian, The Donatist, 2, 39, 90.


36) Augustine, The Letters of Petilian, The Donatist, 71, 157.


37) The Cathechising of the Uninstructed, 21, 37.


38) W. Otten, "Augustine on marriage, monasticism, and the community of the church," Theological Studies vol. 59. (1998). pp. 393-394. ; P. Burnell, "The Problem of Service to Unjust Regimes in Augustine's City of God", in: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54 (1993), pp. 178-180. ; R.A. Markus, Saeculum: History and Society in the Theology of St. Augustin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0), pp. 141ff. ; P. Brown, "St. Augustine's Attitude to Religious Coercion," in: Religion and Society in the Age of Saint Augustine (London: Farber and Faber, 1972), pp. 268 ff. ; F. Van der Meer, Augustine the Bishop: The Life and Work of a Father of the Church (London: Sheed and Ward, 1978), pp.102 -128.


39) W.H.C. Frend, "Donatus 'paene totam Africam decepit'. How?," Journal of Ecclesiastical History (1997) vol. 43., p. 611. W.H.C. Frend, The Donatist Church: A Movement of Protestant in Roman North Afric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52/1971), pp. 193-207.


40) 기독교에 대한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태도의 변화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는 다음을 보라. P. Brown, Authority and the Sacred: Aspects of the Christianization of the Roman World(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pp. 3-54. 또한 브라운의 다음의 저서와 논문을 보라. P. Brown, Power and Persecution in Late Antiquity: Towards a Christian Empire(Madison, Wisconsin: The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92), pp. 118-158. P. Brown, "Christianization and Religious Conflict," in: The Cambridge Ancient History. vol. XIII. The Late Empire, A.D. 337-425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pp. 632-664.


41) Augustine, On the Gospel of St. John, 4, 4.


42) Augustine, On the Gospel of St. John, 4, 4. "quia nondum creverat lapis ille, et impleverat orbem terrarum : quod ostendit in regno suo, quod est ecclesia, qua implevit totam faciem terrae." CCL 36.


43) Augustine, On the Gospel of St. John, 4, 4.


44) Augustine, On the Gospel of St. John, 4, 4.


45) Augustine, On the Gospel of St. John, 9, 15. "Daniel vidit lapidem praecisum de monte sine minibus, et fregisse omnia regna terrarum, et crevisse illum lapidem, et factum esse montem magnum, ita ut impleret universam faciem terrae." CCL 36.


46) Augustine, Ep. 164, 5, 16.


47) Augustine, Ep. 164, 5, 16. 


48) Augustine, The Homilies on the Epistle of John to the Parthians, 1, 2.


49) Augustine, The Homilies on the Epistle of John to the Parthians, 3, 6.


50) 어거스틴이 다니엘 2: 34-35를 다루고 있는 다른 텍스트들을 위해서는 다음을 보라. 1) Augustine,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43, 4.  2) Augustine,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45, 43.  3) Augustine,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46, 11.  4) Augustine,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48, 2.  5) Augustine,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48, 2.  6) Augustine,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6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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