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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소녀 장나라에게서 성숙한 여성의 글래머를 굳이 연출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 안에 있는 수많은 표정의 방들 중에서 불러오기만 하면 됐다.
지난해 연말, 2002년의 마지막 날들을 장나라는 숨가쁘게 보내고 있었다. 방송 3사의 가요 대상에 모두 노미네이트되었다고 일찌감치 귀띔을 받은 상태였다. 그 며칠 전인 12월 13일, 골든 디스크 본상을 수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수왕' 낙점 가능성은 아주 커보였다. 문제는 장나라의 몸이 하나뿐이라는 것. 연말의 지독한 교통 대란 속에서 같은 날, 거의 비슷한 시간에 진행되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장나라와 매니저, 스타일리스트는 일대 전쟁을 치렀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여 분. 기적이었다. '비상등 깜박이고, 하이라이트 켜고 장난도 아니었어요'라며 장나라는 그때를 떠올렸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매니저가 조금의 틈을 쫓아 운전대를 이리저리 돌리는 동안, 그녀는 뒷좌석에서 바쁘게 옷을 갈아 입고 머리를 매만졌다. 그 난리 끝에 가수 장나라는 MBC와 KBS, KMTV 가요 대상, SBS 네티즌 최고 인기상을 거머쥐는 등 대단한 독식력을 과시했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났다. 지금 그녀는 생애 첫 영화 <오! 해피데이>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요 며칠 그녀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루 8시간 이상 잠을 잔다. 오전 11시 좀 못 미쳐서 스튜디오에 나타난 장나라. '그래도 여전히 졸려요'라며 선하품을 한다. 그러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버라이어티한 화장품들을 보곤 빛나는 눈동자. '너무 예쁘잖아요. 그런데 화장은 잘 못해요'라며 눈을 찡긋한다. 엄마의 화장대 앞에서 생각이 많은 여자 아이, 꼭 그 모습이다. 영화 얘길 꺼내자, 그 조그만 얼굴이 복잡해진다. 첫 영화고,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흥행 롱런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떻게 긴장되지 않겠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 새워 가면서 죽을 고생을 했는데요. 망하면 정말 끔찍하죠¡K." <오! 해피데이>는 <닥터 봉>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황기성 사단이 제작과 연출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 '귀여운 스토커'를 키워드 삼아 펼쳐지는 장나라식의 슬랩스틱 유머가 얼마나 유쾌하고 달콤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언뜻 영화 속의 장나라 '공희지'는 <명랑 소녀 성공기>의 '맹양순', <내 사랑 팥쥐>의 '양송이'의 쌍생아 같다. 캔디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않은 젊은 여자. 너무 안전한 선택을 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굳이 애써서 새로운 이미지로 '짠' 하기에는 아직 경력이 짧다'고 한다. "보신 분들이 다들 재미있어 했다는 공통점 때문에 줄곧 하나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한테는 모든 캐릭터가 다 달랐어요. <명랑 소녀 성공기> 같은 경우, 착하고 굉장히 여성스러운 아이였고, <내 사랑 팥쥐>에서는 좀 못된(김래원의 사랑을 알면서도 우정이라는 명목하에 줄곧 곁에 두려는 이기적인 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이였지요. 이번엔 똑똑하고 주도면밀하며 결혼이 꿈인 '천상 여자'랍니다." 연기에 있어서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매너리즘이다. 두 번째 드라마를 할 때 1번, 2번, 3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습관적인 표정들이 생긴 걸 알았다. "'우와, 진짜 큰일났다' 싶었죠. 고작 드라마 두 편에 벌써 이러면¡K. 앞으로 더 심해질 텐데 그럼 지루해서 어떻게 보죠?"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정말 심각하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대중에게 어필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친근함이란 참 놀라워요. 완벽하게 노래 잘하고 연기도 잘하는 사람, 어딘지 멀어 보이잖아요." 한편 그녀와 줄곧 앨범 재킷과 광고 등을 촬영한 사진작가 조선희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가능성. 그녀 얼굴 속에 숨은 가능성을 보며 감탄합니다. 현재 보여지는 모습은 아마 5%에 불과할 거예요." 어쨌든 연예인 장나라와 실제의 모습은 신기할 정도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속보이는 계산을 하느니 '우흐흥' 하는 괴음을 내면서 겅중겅중 돌아다닐 거다. 조선희의 표현을 빌면 그건 '장나라식 유머'이기도 하다.
장나라의 사소한 고민은 자신의 동안(µ£顔)과 그녀가 생각하기에 너무 흰 피부. 뭘 해도 어려 보이게 만드는 이 두 가지가 때로 불만이다. 그러나 사실 장나라는 매우 성숙한 가치관의 소유자다. 그동안 꾸준히 해온 사회 활동을 결코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3월, 한국 국제기아대책기구에 출연료 4천만원을 기탁하면서 기아 대책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난 2월에는 팬 클럽 회원들과 함께 필리핀 빈민촌 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정작 그녀는 정색을 하며 그건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이고, 자신은 그저 응원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또한 대구 지하철 참사 때는 스케줄 조정을 해서까지 장례식에 참석하는 기특한 모습도 보였다. 이러한 봉사와 기부 등의 사회 활동은 아버지와의 오랜 대화 끝에 결론 내린 일종의 룰. 혹시 공인으로서의 역할 인식이 너무 일찍 각인된 건 아닌지? 이 말에 그녀는 '옛날
같으면 시집 가서 애가 있을 나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장나라는 최근 두 가지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하나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그리고 '혼자 노는 양'에서 벗어나기.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사실이 아닌 말들에 일일이 대응하는 걸 멈췄다. 팬을 가장한 일부 고약한 취미의 남자들 때문에 속상해 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2집 앨범 때부터 여자 보디 가드와 함께 동행한다. 또 하나, 그동안 연예계에서 그녀는 이렇다 할 친분 관계를 갖지 않았었다. 멀리했던 것도 사실이고. 요즘은 먼저 다가가려고 한다. 살다 보니 즐거워도 혼자 즐겁고, 힘들 때도 혼자 괴로운 게 힘들었다. 누가 같이 옆에 있는 게 좋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모든 건 시간이 조금씩 해결해주고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아주 마음에 들어했던 드레스를 벗자, 다시 또롱또롱한 우리의 '짱나라'로 돌아와 있다. 때마침 성시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오늘 아주 근사한 촬영했어. 얼마나 글래머러스했다구." 장나라의 이 말을 성시경은 믿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말이야. 증인이 바로 앞에 있는 걸?' 하며 그녀는 기자를 바라보았다. 온 얼굴이 생글생글 미소로 가득했다. 글래머러스한 걸, 장나라. 아직은 이것에 만족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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