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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혁의 알아주는 열정

<영어완전정복>의 문수 역 장혁

2003.05.26 / 윤혜정 기자

장혁은 초면에도 농담을 건네고 싶은 사람이다. '인간적인 것을 빼면 시체'라는 장혁은 지독한 연기 욕심과 열정을 인간적인 카리스마로 승화해냈다. 그가 보통의 청춘 스타와 다른 이유다. <영어완전정복>의 문수는 이런 장혁을 닮았다.

영화는 뒷전, 한참 <쥬랜더>가 재미있다느니 <아리조나 유괴사건>이 더 재미있다느니 옥신각신 얘기하던 장혁과 이나영이 만담을 시작한다. 장혁 왈, ¡§대사보다 상황이나 표정으로 끌어가는 영화가 더 좋잖아요. 언어는 표현 방법이지만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나영이 받아 친다. ¡§그게 바로 우리 영화 <영어완전정복>의 주제예요. 마음이 통하면 된다는 거.¡¨ 혁의 부연 설명, ¡§옛날에는 진짜 언어가 하나였대요. 그런데 이렇게 찢어놓은 거래요.¡¨ 나영의 질문, ¡§그게 무슨 시대예요?¡¨ '벙찐' 얼굴로 망설이는 혁, ¡§엉? 구석기 시대. (기자에게) 그리고 언어보다는 느낌과 눈빛으로 표현하고¡K.¡¨ 또 나영이 말을 가로막는다.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다 그랬어?¡¨ 혁이가 나영을 다독인다. ¡§원시 시대부터 그랬어. 진짜야, 정말이야.¡¨ 일동 침묵, 그리고 폭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이 영화가 무척 궁금해졌다. 남녀 파트너가 사심 없이 호흡이 잘 맞는 것도 참 해피한 일이다. 청춘 스타로 경험과 연륜을 쌓아온 장혁은 선배답게 이나영을 리드했다. 리드라는 것이 대단한 연기론을 알려주거나 죽이는 테크닉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완전정복>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첫 인터뷰라 좀 서먹서먹할 만도 했을 텐데 장혁은 그 분위기를 능청스러움과 입담으로 잘 풀어갔다. 지금의 장혁은 <화산고>에서 유채이에게 작업 들어가던 무공의 고수 경태 혹은 <정글쥬스>에서 ¡§저 아가씨, 몸매 참 착하네¡¨라고 읊던 양아치 기태 그 어디 중간쯤 있다. 그러고 보니 <대망>의 어리버리하게 착한 재영도 한쪽에 걸쳐 있다. 달라보이는 이 캐릭터들에게서 장혁이 체득한 것은 바로 연기의 테크닉이 아니라 현장의 노하우다. ¡§이 영화 관객이 얼마가 들었다 안 들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이에요.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얼마나 즐겁게 일했느냐, 구성원들과 어떻게 의사소통했느냐의 문제예요. 그런 현장이 배우에게 남는 거죠.¡¨

장혁의 고집과 끈기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화산고> 현장에서 장혁의 별명은 ¡¥열정¡¦이었다. 촬영장의 의자에 ¡¥개척¡¦ ¡¥열정¡¦ 등의 단어를 써넣을 정도로 촌스러운 구석도 있지만, 바로 그것이 데뷔 초 한동안 그를 따라 다닌 ¡¥리틀 정우성¡¦이라는 수식어를 지웠다. 60억짜리 블록버스터 <화산고>를 영화 데뷔작으로 선택한 장혁은 촬영 기간 11개월 동안 10m 높이의 와이어에 매달리고 여섯 번 졸도해 가면서 경수 역을 소화했다. <정글쥬스>에서 청량리 뒷골목을 배회하는 조폭 '똘마니' 기태도 고생한 걸로 치면 만만치 않다. 한참 추웠던 지난 겨울, <대망> 촬영현장을 찾았을 때도 장혁은 호랑이라 소문난 김종학 감독에게 혼나고 있었다. 장혁은 하루 종일 잘했다는 소리보다 그게 아니라는 얘기를 민망하리만치 많이 들었지만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으로 웃고 있었다.

듣자 하니 <영어완전정복>에서도 장혁은 별명에 부끄럽지 않은 열정을 선보이고 있다 한다. 문수는 바람둥이이지만 남모를 상처를 안고 사는 남자다. 학원에서 만난 이상하고 특이한 여자 영주를 무시하지만 나중에는 그에게 마음을 연다. 장혁은 ¡§문수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이다. 이 여자가 정말 좋아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편하니까 꼬셔봤다가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물러나고 마는 그런 어설픈 카사노바다¡¨라고 문수를 이해한다. 솔직히 문수라는 인물은 장혁의 전작 캐릭터인 ¡¥망가진 카리스마¡¦에 바람기 하나 보탠 걸 빼면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인다. 또 영주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다는 것도 장혁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몸으로 한 연기는 머리로 남지만 가슴으로 한 연기는 마음에 남는다¡¨고 믿는 순진한 배우 장혁에게는 이 역할을 누가 봐도 매력 있고 ¡¥메리트¡¦ 있는 역할로 소화하고 싶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동경해 왔다는 김성수 감독과의 작업이라는 점도 그의 근성을 심하게 자극했다.

지난 주 열린 <영어완전정복> 제작 발표회에서 장혁은 ¡§겉으로 멋진 모습보다는 망가졌다고 하는 캐릭터에서 도리어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탭댄스 시범을 즉석에서 해 보여 박수도 받았다. 카펫 바닥에서도 한 달 내내 배웠다는 탭댄스 솜씨를 훌륭히 발휘했다. 장혁은 앞으로도 한동안 연기 잘하는 배우라기보다는 열심히 하는 배우로 먼저 기억될 듯 싶다. ¡§스물세 살에 맡은 캐릭터를 스물여덟 살 때 하면 더 잘할 것 같죠? 근데 그게 아니에요. 연기력은 모르겠지만 따라갈 수 없는 게 하나 있어요. 바로 그때의 느낌, 열정이죠.¡¨ 아직 그 열정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장혁의 말을 믿어볼 참이다. 그의 최고의 무기, 인간적인 카리스마는 여전히 성장할 테니까.

사진 김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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